경북 구미 불산 누출사고와 관련 사고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누출 발생 후 관련기관에서 재난매뉴얼 재난 대응태세에 큰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누출사고 당시 환경 당국은 인근 지역의 2차 피해를 예상하고도 뒤늦은 심각경보를 발령하는 등 위기대응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위기관리경영 - 이정직기자>

안전수칙 지키지 않은 것이 큰 문제
지난 9월 27일 (주)휴브글로벌에서 직원들이 20톤짜리 탱크로리에서 공장 저장탱크로 불산(불화수소산)을 주입하던 중 탱크로리의 뚜껑이 열리며 폭발했다. 이 사고로 직원 5명이 숨지고 마을주민 18명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사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불산 유출의 여파로 마을 농작물은 타들어가고 주민들은 후유증을 호소했다. 경북 구미 국가산단 4단지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일어난 불산누출 사고를 조사 중인 구미경찰서 역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구미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복원한 동영상을 정밀 분석한 결과, 작업자들이 작업장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런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밝혀졌다.경찰은 지난 9월 27일 오후 공장직원 3명이 연료탱크 위에서 작업을 하던 도중 작업자인 최씨가 드럼펌프 수리기사 이 씨를 만나러 내려온 뒤 연료밸브가 열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작업자들은 첫 번째 탱크에서 불산가스를 공장으로 옮긴 뒤, 두 번째 탱크에서 불산가스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 공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원료밸브에 호스가 연결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원료밸브를 실수로 열어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작업자들은 작업 순서를 무시하고 에어밸브와 원료밸브의 플랜지를 동시에 제거한 뒤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공장 직원들은 방진 마스크와 노란 고무장갑만 착용한 채 작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 장비만 제대로 갖췄더라도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경찰은 “평소에도 작업을 빨리하기 위해 에어밸브와 연료밸브의 플랜지를 동시에 열어놓고 작업하는 등 작업 지침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공장에 안전장비를 비치하고 있음에도 작업자들이 덥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의 착용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회사 관계자들에 대한 안전관리 등 업무상 과실에 대한 조사를 벌여 사법처리할 예정”이라며 “구미시·노동부 구미지청 등 관련 기관의 관리감독 및 조치 적정 여부 등을 조사해 혐의가 드러나면 모두 사법처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관 재난대응대처에 큰 문제
한편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 의원들은 관련기관의 재난대응대처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불산가스 누출사고 당시 환경 당국은 인근 지역의 2차 피해를 예상하고도 뒤늦은 심각경보를 발령하는 등 위기대응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지난 10월 16일 대구지방환경청이 김경협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방환경청은 9월 27일 구미국가 4산업단지 화공업체에서 불산가스가 누출된 지 6시간 47분이 지나서야 심각경보를 발령했다.

김 의원이 공개한 사고조치 상황기록을 보면 환경 당국은 불산가스 누출이 인근지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오후 8시 20분 주민대피령을 내렸다. 동시에 발령했어야 할 사고단계 심각경보는 1시간 10분이 지난 오후 9시 30분에서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대구환경청은 사고발생 8시간 47분 후인 지난달 28일 오전 2차례에 걸쳐 불산을 검출했지만 정량 농도 측정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은 “즉각 대응태세에 돌입해야 하는 심각경보의 발령을 늦췄고, 아무런 근거 없이 5시간만에 심각경보를 해제해 피해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화학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상 심각경보를 해제하려면 환경부 본부 자체위기평가위원회에서 상황을 분석한 뒤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하지만 대구환경청은 이 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수경 의원도 구미 사고에 대해 ‘예고된 재난’이었다고 비난했다. 임 의원은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이미 화학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이라는 것을 지난 2월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마련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해당 매뉴얼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 및 현장지휘본부와 핫라인을 설치해 현장 대응활동을 통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구미시는 구미코(컨벤션 센터)에 설치했던 종합상황실을 사고 다음날 구미시청으로 옮겼다가 2차 피해가 확산되자 이날 다시 구미코로 옮기는 등 허둥댔다고 임 의원은 지적했다.
그는 “평소 관리감독이나 실제 상황에 대비한 훈련 등이 미비해 이와 같은 늑장대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고 짚었다. 문희상 의원은 초등대응 실패와 정부차원의 늑장 대처가 빚어진 이유에 대해 “중앙컨트롤 타워의 부재와 관련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각각 흩어져 있는 메뉴얼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모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충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실 매뉴얼이 피해 키워
또 한국산업단지공단(이하 산단공) 대경권본부가 지난 3월, 재난대응 매뉴얼을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제남 의원이 산단공으로부터 제출받은 산단공 대경권본부 「산업단지 재난유형별 현장조치 행동매뉴얼(2012.3.24.)」에 따르면, “산단공 대경본부는 사고 발생시 주민대피, 유해물질 제독방법 등에 대한 상황 전파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이를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들어났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산단공 대경권본부가 작성한 행동매뉴얼의 법적근거를 보면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을 비롯하여 ‘유독화학물질관리법, 액화석유가스사업법,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등 다수의 관련법을 근거로 삼고 있으며, 관련 다수의 법에 따라 국가산단 내 발생하는 재해에 대응토록 매뉴얼에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확인항목에서 산단공은 매뉴얼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매뉴얼에 따르면 독성화학물질 사고 발생시, 산업단지 내 방제장비 및 방제약품 지원업체가 투입하도록 되어 있으며, 필요시 지자체를 경유해서 군부대 협조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구미국가산단 사고에서는 지침에 따라 즉시에 사고수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뿐만아니라 “유관기관과의 협조강화를 위해 지침에서는 관할소방서에는 상황조치방법을 전파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실제 사고 당시에는 조치방법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불산을 물로 희석시키는 등 2차 피해가 야기되었다”며 “관할경찰서와의 협조에서도 원활하지 않아 소석회를 현장에 공급함에 있어 사건발생 2시간 20분이나 지나서야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김제남 의원은 이번 구미국가산단 불산누출사고에 대해 “항상 안전사고에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되는 산업단지에서 부실하게 제작된 재난대응매뉴얼로 인해 피해가 더욱 커지게 됐다”고 진단하고 “산단의 현실에 맞는 체계적인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주)휴브글로벌 지난 2009년도에도 누출사고 발생
한편 (주)휴브글로벌에서 지난 2009년도에도 누출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상정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휴브글로벌에서 2009년부터 2012년 10월까지 3건의 산업 재해가 발생했다”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휴브글로벌이 지난 해 정기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았고, 불산 취급 사업장에서도 빠져 있었는데 불산 유출로 인한 사고가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라고 제기했다. 심 의원은 “휴브글로벌은 2008년 4명의 노동자로 시작한 작은 회사지만 2009년 불산 유출 화상, 2010년 부딪힘 사고, 2011년 허리 부상 등 매년 산업 재해가 발생했다”며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이 사업장에 대한 점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심 의원은 “구미 불산 유출 사고 발생 이후 초등학교 등 9곳은 휴교 조치됐지만 공장은 모두 가동되고 있다. 노동자 보호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사고는 불산 누출에 대한 산재 사고가 이미 있었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참사”라고 지적했다. 심 의원은 “구미 불산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따져 물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에 대해 “초기에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했던 점은 인정한다”면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앞으로 전국 각지의 위험 장소를 파악해 관련 메뉴얼을 만드는 등 후속대책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불산 등 재난사고 적절한 대비책 필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 재난, 재해 과학기술지원특별위원회의 재난 대비 정책 우선순위 설문조사 결과 재난대비 인프라구축(71.0%), 재난예측, 대응기술 등 과학기술개발(67.3%), 대피훈련 등 안전교육(25.4%), 재난발생 시 복구, 구호를 위한 인력 양성(23.6%) 순으로 응답했다. 또한 이 설문조사에서는 여러 재난 가운데 호우, 홍수, 태풍, 해일과 같은 자연재난과 대형사고 화재 등으로 인한 피해를 가장 우려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구미 불산 누출사고와 같이 지리적 여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재난 상황에 적절히 대비할 수 있는 재난에 대한 연구와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의견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재난, 안전분야 ‘공동피해조사위원회’ 구성해야
이 같이 재난 발생 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난, 안전분야 ‘공동피해조사 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BCP협회는 “재난, 안전분야의 미래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도 BCP를 통한 ISO22300 시리즈의 도입이 필요하며 이와 함께 재난, 안전 ‘공동피해조사 위원회’를 통해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전 지구적 자연환경의 변화로 인해 각종 국가핵심기반 역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대형사고, 태풍, 호우, 집중호우, 홍수, 지진, 황사, 산사태, 가뭄 등의 자연재난과 대형화재, 붕괴, 침몰, 추락, 폭발 등의 인적재난, 또 최근 빈발하는 각종 전염병(사스 및 구제역)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국가핵심기반 영역인 국가시스템, 금융, 교통, 수송, 전력, 정보통신, 주요 산업단지, 에너지, 원자력, 댐, 공중보건, 공공질서, 정부시설, 국가적 유물유적 등 각 분야가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전력 또한 정부 정책과 방향의 부재로 에너지위기 등 혼란이 증폭되는 등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에 따라 협회는 “재난, 안전 정책대안의 마련과 정책의 실질적 변화를 위한 민, 간 협력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민, 간 협력 체계 전문가 구축을 통한 문제점과 대안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정책 토론회 등을 통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재난, 안전 ‘공동피해조사 위원회’를 위하여 사무처를 구성하고 각 분야별 실무 위원회 구성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토대로 각 분야별 정책과 방향을 제시하고 관련법의 개정 및 제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계속적인 활동 전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사회안전학회 김진항 회장도 “대형사고, 태풍, 재난 등 국가 위기관리 상황에서 재난정보의 중요성은 매우 높지만 관련 기관의 경우 재난정보제공에 대해 소극적인 것이 문제”라며 “각 지역 공공기관의 재난관리 역할증대와 필요시 공동피해조사위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